함성때마다 문지기는 외로워/ 김훈
세계 축구의 정상급 팀들은 인종과 국적이 제각각인 여러나라 선수들로 구성됐다. 경기장을 달리는 선수들은 같은 팀이라도 여러 피부색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모든 경기는 조국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경기 시작 직전에 출전팀의 국기는 정중한 예우 속에 입장한다. 축구가 제 나라의 이름으로 벌어진다는 것은 선수의 국적이나 인종보다는 오히려 여러나라의 독특하고 고유한 전략과 기술의 대결이라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그러나 경기가 숨막히는 절정의 순간으로 치달을 때, 경기장의 잔디 위에서는 조국이나 인종보다는 개별적인 인간과 공이 먼저 보인다. 그 순간엔 인간 너머의 집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축구경기장에서 가장 외롭고 참혹해 보이는 개별적인 인간은 문지기다. 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골문 앞에 선 한국의 김병지나, 프랑스의 바르테즈의 모습도 그렇게 외로워 보였다.
프랑스는 공을 뒤로 돌리면서 팀 전체가 앞으로 진격해나갔다. 한국은 프랑스처럼 전술적으로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상대의 수비가 무너지는 순간에 허점을 맹렬하게 파고들어갔다.
미드필드에서부터 아군 진영이 뚫려서 수많은 적들이 골문으로 몰려들 때, 김병지는 골문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기에 갈팡질팡했다. 그는 마치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를 홀몸으로 막아내는 인간과도 같았다. 그가 실패했을 때 관중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바르테즈는 전반전 26분 자유차기로 벌어진 문전 혼란에 무너지고 골을 허용했다. 상대는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그는 문지기의 이점을 거의 작동시킬수 없었다. 골은 그의 몸을 넘어 골 그물을 흔들었다. 그가 실패했을 때도 관중의 함성이 일었다.
실패한 문지기들은 자신의 몸 뒤에서 그물을 흔드는 공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문지기들은 또 다시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든 골에는 함성이 일었고, 그때마다 문지기들은 무너졌다. 김병지도 무너졌고, 바르테즈도 무너졌다. 문지기들은 자신의 참패에 열광하는 관중의 함성을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 되는 것일까.
함성이 일 때 경기장엔 오직 문지기 한 개인만이 외톨이가 돼 골문 앞에 서있다. 승리의 맥락을 따라서 축구를 보는 일과 패배의 맥락을 따라서 축구를 보는 일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패배의 맥락으로 축구를 볼 때는 개별적 인간이 잘 보이고, 승리의 맥락으로 축구를 볼 때는 인간의 집단이 먼저 보인다.
김훈hoo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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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훈,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김훈오빠도 거기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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