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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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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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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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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도덕적인 분노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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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좋아하는 작가 김훈의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에 실린 글 한 꼭지.
<도덕적인 분노에 대해>
도대체 개그우먼 이영자는 무슨 죽을죄를 지었길래 저 지경이 되어서 처박혀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의 몸에 대한 이 사회의 미의식은 날씬한 여자를 우대하고 숭배하며, 뚱뚱한 여자를 모멸하고 혐오한다. 이 혐오감은 이미 미의식을 넘어서서, 사회적 폭력에 가깝다. 그것을 폭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나는 어떤가. 나도 뚱뚱한 여자를 여자로서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의 몸은 사물화되어 간다. 이 사물화의 목표는 '잘빠진 여자'이다. 언론과 대중예술과 상업광고와 패션과 디자인과 의학기술과 식품산업과 미용산업과 화장품산업과 대량소비시장의 힘이 모두 합쳐진, 이 사회의 가공할 연합세력이 여자의 몸을 쉴 새 없이 옥죄고 비틀고 있다. 사회 전체가 이러한 판국에, 개별적 여자의 자의식이 거기에 저항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세속도시의 여름은 '잘빠진' 여자들이 내뿜는 성적 긴장으로 터질 듯하다.
이영자는 재능 있는 연예인이지만, 뚱뚱한 이영자는 뚱보에 대한 이 사회의 혐오와 모멸을 은연중에 대리만족시켜 줌으로써 인기를 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지는 인기가 그 여자의 내면에서 참혹한 상처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뚱뚱한 여자를 집단적으로 혐오하는 이런 미학적인 사회에서 그 뚱뚱한 여자에게 날씬해지고 싶은 비원이 있었다면, 수술을 했건 운동을 했건 간에 나는 그 여자가 날씬해진 것을 축하한다. 살을 빼서 날씬해진 여자를 상대로, 그 여자가 운동을 해서 살을 뺐느냐 수술로 살을 뺐느냐를 검색하고 입증하는 일도 언론의 사명일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하다.
그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날씬해진 몸매로 TV에 나와서 "운동을 해서 살을 뺐다"고 말했다. 이 알량하게도 정직한 사회에서, 이 대목이 이른바 '정직성' 시비에 걸려 있다. 아마 운동도 하고 수술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운동으로 살을 뺐다"는 그 여자의 말이 정직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부정직한 말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이 정직이나 부정직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발기력이 부족한 내가 비아그라를 먹고 뛰어난 발기력을 행사한 후에 "나는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해서 정력이 좋다"라고 말했다고 치자. 이 말은 거짓말인가. 이 거짓말은 죽어야 할 죄악인가. 언어와 사실을 단순 비교하는 논리에 따른다면 이 말은 물론 거짓말이다. 그러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적인 내면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말은 그 말을 하는 나에게는 절실한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말에 대한 도의적,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잘나가던 한 생애를 포기해야 하는가. 당신들은 비아그라의 진실을 위하여 나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가. 그것이 당신들의 도덕이나 순결이 될 수 있는가.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을 해서 정력이 좋다"는 나의 말은 정말인가. 이 말은 정말도 아니다. 그러니 이 말은 대체 어떤 말인가. 그 말은 남들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를 따지고 덤벼들 이유가 없는 말이다. 내 말은, 그 말이 별말도 아니라는 말이다.
들으니, 이영자는 수술을 해준 병원 측과 사업 등에 관련된 분쟁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 분쟁은 순전히 당사자들 사이의 분쟁일 뿐이다. 나는 공인(公人)의 사인(私人) 됨을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는다.
이영자는 기자회견장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 여자는 이 나라의 언론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내 직업을) 그만두라고 하신다면 그만두겠습니다." 나는 경악했다. 이 나라 언론이야말로 여자의 몸을 옥죄고 비틀어온 가장 무서운 권력이었다. 그 권력이 지금 이영자의 눈물을 향해 폭소와 야유를 보내고 있고, 대중들이 그 권력에 갈채로 호응하고 있다.
여자의 몸을 이처럼 사회 전체의 노리개로 삼아도 되는 것인가. 나는 이영자에게 쏟아지는 이 사회의 도덕적 분노가 두렵다. 이 분노는 폭소와 야유를 동반한, 즐거운 분노로 보인다. 이영자에 대한 분노는 사회정의도 아니고 언론의 자유도 아니며 민주주의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폭소를 동반한 분노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파시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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