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디지털TV라는 게 생겼다면서 집에다가 TV수신박스를 하나 달아주었다. 그 후로 50개가 넘는 채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50여 개의 채널에서 수시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는... 애정의 조건(채시라/한가인 나오는 거), 노란손수건(이태란/추상미 나오는 거), 목욕탕집 남자들(강부자 외 다수 나오는 거), 천생연분(황신혜/안재욱 나오는 거), 가을동화(내가 중국 온 이래 벌써 6번째 반복 방영중, 겨울연가도 그만큼 많이 했다), 욕망의 바다(유동근/배종옥 나오는 거), 지금은 연애중(소지섭/채림/권상우/이의정 나오는 거), 인어아가씨(장서희 나오는 거), 신데렐라(황신혜/이승연 나오는 거) ..... 내가 한국 드라마 뭐 하나? 찾아본 게 아니고, 그냥 채널 돌리다가 확인한 것만 이만큼이다.
그뿐 아니라 중국 드라마인데 한국배우가 떡허니 나오는 것들이 있다. 모두 중국 배우들이고 중국에서 촬영했고 중국의 생활이 내용인데 한국배우가 그들중 한명인 척-하며 연기하는 거다. 입모양을 보면 한국말을 하고 있는데, 그 위에 성우가 더빙을 한다. 한국인이 보기엔 상당히 웃기고 어색하다.
이정현이 상당히 꾸질꾸질하니 얼핏 보면 중국사람으로 보이게 나오는 드라마가 하나 있고, 채림이 두 재벌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 있고, 차인표가 나오는 사극이 있고, 김민이 **공주라는 사극에서 바로 그 **공주 역으로 나왔고(중국 언니들 속에서 독보적으로 예뻤다), 안재욱이 정말 성의 없게 대충 연기한 듯한 드라마가 또 있고, 김소연도 무슨 사극에 잠시 출연했었다.
여기도 ‘연예가중계’류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기 또 한국 연예계 소식이 뻔질나게 등장한다. 덕분에 송승헌이 군대 가는 장면을 중국집에서 발톱 깎다가 보게 되었고, 보아의 새앨범이 일본에서 잘나간다는 것도, 소지섭 군대 간다는 소식도 여기서 들었다.
이런 프로에서는 ‘따라해봅시다’류의 패션 코너가 있다. 그건 이렇게 진행한다. 강타/안칠현군의 사진 한 장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중국 연예인 하나가 동대문시장처럼 커다란 의류상가에 가서 그 사진 속의 아이템들과 최대한 비슷한 것들을 골라서 가져온다. 그걸 입고 사진 속의 강타/안칠현과 최대한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한 장 척 찍는다. 지금까지 이 코너에는 강타/안칠현 외에도 전지현, 황보, 이정현, 김태희, 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수많은 한국 연예인(의 사진)이 등장했다.
며칠 전 노동절 연휴에는 ‘同一首歌’라는, 한국으로 치면 열린음악회쯤 되는 프로그램에서 노동절을 기념해 특집방송을 했는데, 중국 최고의 인기가수들로 구성된 출연진 속에 JTL이라는, 이제 나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JTL이 등장하자 객석에서 하얀 풍선을 흔들며 여자애들 울고... 요즘 장나라는 아예 중국으로 이사를 온 것 같다. 중국어 앨범을 냈다고 하고, 그 음반 홍보 포스터가 거리 도처에 붙어 있고,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 입고 중국 TV에 자주 나온다. 노래라곤 <첨밀밀> 하나밖에 안 부르지만.
거리에는 한국어가 프린트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대부분 아무 글자나 가져다가 마구 찍어놓은 것이라 문장은커녕 단어도 성립되지 않는 것들이다. 혹은 아무데서나 뚝 끊은 문장이라 난데없기도 하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 하나는 가슴팍에 커다랗게 ‘우연히,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라는 한글이 새겨진 티셔츠를 교복처럼 입고 다니고, 꼬마아이들 입는 아동복 가슴에는 ‘아동복’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꽤나 많다. 어제는 버스에 탔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 가슴에 ‘상처엔 후시딘’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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