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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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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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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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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 ② - 베니스 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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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리도Lido섬은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리조트 지역이라고.
배에서 내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한적하다는 이곳은 더 조용하고 촉촉해져버렸다.
작은 섬이라고 해서 일단 도착하면 금세 영화제 분위기에 휩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엄청난 착각.
바포레토 정류장 근처에서는 베니스 영화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극장 앞에서 내리자 비로소 하나 둘 나타나는 징표들. 제대로 찾아오긴 했군 그래...
 
하지만 말이 영화제지 리도섬의 현장은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하기만 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온 영화인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떠들썩한 마켓도 찾아볼 수 없었고, 바쁜 일정을 고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현란한 영화관의 행렬도 없었으며, 우리의 부산영화제처럼 영화팬들의 후끈한 열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의 부산영화제나 부천영화제가 많은 상영관이 운집한 거리에서 관객들을 끌어들이며 진행되는데 반해 베니스영화제는 소수의 상영관에서 관계자들끼리만 보고 평가하는 주최측만의 잔치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
걷다가 지쳐서 로비에 앉아 좀 쉬어볼까 하고 들어간 Westin호텔은 아마도 영화제 주요 관계자들의 거점이었던 모양. 호텔에 들어서자 영화제 ID카드를 목에 걸고 다니는 기자인 듯 싶은 사람들이 많았고 로비 한복판엔 영화 관련 자료들도 수북했다.
무엇보다도 행운이었던 것은 내가 로비에 들어섰을 때 대형 멀티비전으로 기타노 다케시 인터뷰가 라이브 중계되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이 근처 어딘가에 나의 기타노가 있다는 뜻이겠지?
기타노, 어디에 있나요?
소파에 앉아보지도 않고 인터뷰장을 찾아 로비를 가로질러 나가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바다!
아, 그렇지! 여기는 섬이었지!
뜻밖의 상황에서 만났기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던 것일까. '그해 여름 조용한 바닷가'라는 말은 앞으로 나에게 이곳 웨스틴 호텔 뒤로 펼쳐진 이 바다를 떠올리게 할 것 같다.
 
한참을 바닷가에서 서성이다보니 나를 자극하는 아주 강한 욕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식욕..
어젯밤에 베네치아에 떨어진 후 여태까지 호텔에서 먹은 아침식사 말고는 입에 집어넣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영화제 현장 주변에는 변변한 식당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아까 리도섬에 도착하자 마자 시내에서 뭔가를 먹었어야 했어.. 라는 말을 수차례 궁시렁거리며 식당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인 듯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 근처에 식당 있나요?'라고 열심히 물어보았지만 모두들 '아니, 왜 이 근방에서 식당 같은 걸 찾는담?'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발아프게 걷다가 마침내 근방 1킬로미터 이내의 유일한 식당인 듯한 곳을 찾아냈고,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돈 내고 사먹는 식당이 되었다.
메뉴판에는 웬놈의 피자와 스파게티가 그리도 많은지... 도저히 고를 자신이 없어서 서빙男에게 '너희 집에서 제일 맛있는 피자와 제일 맛있는 스파게티를 하나씩 추천해다오' 했는데 아, 이놈이 우리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것이다. delicious, recommend... 정도의 단어도 전혀 못 알아듣는 눈치.
눈치없어뵈는 서빙男에 이어 서빙女까지 동원되었어도 전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다가 결국 우리의 뜻을 전해준 단어는 다름아닌 best였으니... 그리하여 우리는 바닷가 식당의 베스트 스파게티와 베스트 피자로 이탈리아에서의 첫번째 식사를 치러낼 수 있었다.
▷▶피자와 스파게티는 아주 맛있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피자를 많이 먹게 될지 생각도 안해봤으니까.
배불리 먹고 다시 베네치아 본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포레토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결정. 리도섬을 좀더 구석구석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제 현장을 찾아서 오는 길에는 그렇게 멀리 느껴지더니, 돌아가는 길은 가깝기 그지없었다.
왜 모르고 가는 길은 항상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나중에 다시 이탈리아에 오게 되면, 리도섬에는 애인이랑 같이 와서 웨스틴호텔에 묵으리라...
바포레토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어쩐지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뜨였다.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날 리가 없는데.. 저 남자가 누구더라..
아, 명계남!
그리고 그 옆엔 바다를 등지고 시내를 향해 먼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이창동 감독.
서울에서 만났다면 아마 그냥 지나치고 말았겠지만 어쩐지 무척 반가운 마음에 사인을 청했다.
이날은 9월5일이었는데 돌아오는 날 비행기에서 보니 9월9일 폐막식날 <오아시스>가 감독상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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