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 강우석
감독 : 강우석
원안 : 구본한
각본 : 백승재, 정윤섭, 김현정, 채윤석
촬영 : 김성복
상영시간 : 138분
뒤집어지게 웃은 횟수 수십 번, 화들짝 놀란 횟수 서너 번, 아-! 하고 감탄한 횟수 예닐곱 번, 가슴 짠했던 횟수 서너 번 ... 그리하여 비오는 겨울날의 토요일 오후를 유쾌하게 만들어준 [공공의 적]에 박수를!
액션이니 코미디니 느와르니 호러니 하는 전형적인 장르 구분의 테두리 안에서 애초부터 기획되고 제작되는 경향이 유난히 강한 것이 영화다.
장르 구분이라는 것은 원래 구체적이고 제각각인 개별 작품들을 편의상 몇 가지 묶음으로 무리지으려는 추상화 작업인데(아마도 학자나 평론가, 기자, 유통업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일 거다), 그 추상화 작업이 다시 구체적 개별 작품들을 규제하는 경향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경향이 유난한 것이 영화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다.
모순적이게도 창작자들의 창작의 범위가 창작자 아닌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장르 안에서 움직이게 된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내 남자친구의 경우만 해도 자신의 구상을 들려줄 때 "그러니까 이건 미스테리물인데..." "이건 전형적인 코미디지..." 라는 식으로 기존의 장르 안에서 첫 단추를 끼우기 시작하며, 간혹 "멜로라고 하기엔 이러저러한 부분이 좀 부족해"라는 식으로 완결성과 완성도를 장르 내부의 전통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내 남자친구만의 특성은 아닌 것 같다. 그가 만나는 제작자 역시 "우리 이거 코미디로 가자" "이런 하드보일드는 우리나라에선 성공한 예가 없다"라는 식으로 방향을 잡아간다고 한다.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1998)] 이후 3년만에 감독의 자리로 돌아온 강우석은 전형적인 장르 안에서 영화를 만들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코미디와 하드보일드를 짬뽕시킨 [공공의 적]을 탄생시켰다. 직접 맛본 그 짬뽕의 맛은 세련되고 깔끔하더라는 것이 나의 20자평이다.
돈 10억 때문에 부모를 죽이러 가서 수십방을 난자하고 돌아나오는 조규환(이성재)과 똥마려워 헤매다니다가 똥싸고 일어서는 강형사(설경구)의 조우는 짬뽕맛의 절정이었다.
부모 살인 같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을 무리없이 삽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성재를 축으로 한 하드보일드를 설경구를 축으로 한 코미디가 잘 끌어안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영화 초반에는 나도 그랬고 다른 관객들도 영화의 흐름과 감독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못해 감독이 웃기고자 의도했음에 분명한 대사와 장면에서 절대 웃어주지 않는 껄끄러움이 있었다. 대사의 흐름상 폭소 한방을 기대했음에 분명한 "여기는 콜라텍인데요" 같은 초반 두어 장면이 그랬다.
반면 어느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마음을 탁 열고 이 영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때부턴 강형사가 하품만 해도 웃게 되는 '매직'이 벌어진다. 확실히 뒤로 갈수록 힘이 커지는 영화이고, 그 힘이야말로 강우석의 내공이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한 마디) 강형사가 돈을 아주 많이 버는 조규환의 월급이 얼마쯤 될까를 상상하다가 고민끝에 "6백만원"이라는 액수를 생각해내는 장면이 있다. 나와 내 남자친구는 6백만원이라는 액수에 웃음을 터뜨렸으나(절대 조소가 아니다) 우리 둘 말고는 뤼미에르 극장의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다. 정말 절묘한 이 6백만원의 유머에 공감한 고독한 샐러리맨은 연락 주시길... 웃고 나서 외로웠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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