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리챠드 에어
제작 : 스콧 루딘, 로버트 폭스
각본 : 리챠드 에어, 찰스 우드
촬영 : 로저 프렛
음악 : 제임스 호너
주연 : 주디 덴치, 케이트 윈슬렛, 짐 브로드벤트, 휴 본빌
이 영화의 주인공 아이리스 머독은 1999년 사망한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소설가라고 한다. 옥스퍼드대에서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35세 때 처음 발표한 <그물 아래> 등 25편의 소설을 쓴 대표적인 지성.
평생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지성을 세상에 떨치고 살았던 그녀가
치매에 걸려 죽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것이 이 영화 <아이리스>다.
원작은 남편 존 베일리가 쓴 <아이리스를 위한 엘레지 Elegy For Iris>.
만화가가 꿈이었고 그래서 만화가가 된 백혜경양이 옛날에 지나가는 말로
눈이 멀거나 손이 마비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이리스>를 보는 동안 혜경이에게 들었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가수가 목을 다치는 것, 만화가가 손을 다치는 것, 지성이 정신을 다치는 것-
물론 치매는 모든 직업인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惡중의 惡이지만.
이 노년의 비극과 비극을 감싸는 사랑, 그리고 젊은 날의 찬란함이 90분간의
런닝타임 속에 촘촘히 섞여 있다.
꿈과 정열이 팔팔 끓어넘치는 젊은 날의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와
서서히 무너져가는 노년의 아이리스(쥬디 덴치)가 자주 교차되는 구성은
다소 산만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젊은 날의 아름다움과
노년의 서글픔을 제각각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케이트 윈슬렛의 푸른 눈과 붉은 뺨이 쥬디 덴치의 움푹 꺼진 눈, 푸석한 발목과
너무나 선명하게 자주 대비되기 때문이다.
대개의 영화가 현실을 지우고, 남의 인생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매체였던 데 비해
<아이리스>는 너무나 생생한 보편의 인생을 보게 한다.
현란한 나이트클럽의 조명 아래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누추한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갑자기 대면한 느낌이다.
인생은 짧고 안타깝다.
아름다운 여인은 늙어버리고 평생 쌓아놓은 기억은 증발해버린다.
쥬디 덴치의 아름다운 연기, 텔레토비를 보는 아이리스 머독의 모습,
수줍은 남자의 우물쭈물하는 사랑, 언제나 아름다운 케이트 윈슬렛
이렇게 많은 이미지를 한꺼번에 가슴에 담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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