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무엇이 나를 잠재우는가
대학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라보엠>을 관람하며 깊은 잠을 잔 이후
실로 오랜만에 오페라를 관람했다.
내 나이 서른. <오페라의 유령>처럼 돈벌이에 성공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소수의 작품이 아니고서야 오페라라고 하는 것이 대개 지루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손가락>이라는 오페라를 보러 간 것은 물경
20만원이나 한다는 티켓을 공짜로 얻은 까닭이요, 허구헌날 남들 다 보는
영화만 보고 사는 것이 어쩐지 시시하게 느껴졌던 까닭이다.
20만원씩이나 하는 오페라씩이나 보고 산다는 허세를 부려보고 싶었던 거다.
오페라가 시작되자 대단히 멋진 음성을 가진 독일 남자가 대단히 긴 독백을
시작했다. 무대 양 옆으로 자막이 올라갔지만 나는 자막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독일 남자의 독일어가 놀랍도록 감미로워 눈을 감고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 남자의 길고 긴 독백이 끝나자 잠시 한국 남자의 노래가 있었고, 곧이어
일본 여자의 일본어 노래가 시작됐다. 그리고 프랑스 남자의 프랑스어 노래..
일어와 불어 노래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한국어
노래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오페라라고 하는 것은 "당신은 참 예쁩니다"라는 짧은 문장마저도
다아아~앙 시이이~인 으으으은 차아아~암 예에에~쁘으읍~니이이이~다아아- 라고
단조로운 가락과 함께 엿가락 늘이듯 늘이는 장르이기에 한국말도 한국말 같지
아니하며, 설령 한국말로 들리는 부분이 있다 해도 서술어를 들을 즈음이면
앞서 노래한 주어가 무엇이었는지 까먹을 정도로 느려 터진 까닭이다.
오페라는 왜 그래야 하는 걸까? 대화로 처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부분은
대화로 처리해주고 노래로 불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부분만 노래로 해주면
안 되는 걸까 - 라는 것이 평생 오페라 한두 편 보기도 힘든 민간인의 생각이다.
게다가 일어노래와 불어노래는 자막마저 넣지 않았으니 이는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포기하거나 무시한 처사라는 것이 평생 오페라 한두 편 보기도 힘든
민간인의 두번째 생각이다.
결국 나는 7시부터 약 한 시간 가량을 나른하게 졸다가 알 수 없는 내용의
<안중근 손가락>이 한창 목청을 돋구고 있는 8시 15분에 어둠을 헤치고
극장을 탈출했다.
놀라운 것은 집으로 돌아와 "안중근 손가락"으로 검색을 해본 결과
거의 모든 신문기사가 이 오페라에 찬사를 보내고 있더라는 것.
이럴 땐 뭐랄까, 좀 외로워진다.
[공연] 신선한 실험… 오페라 새 가능성 제시
[속보, 연예오락] 2002년 03월 05일 (화) 17:49
베르디나 푸치니의 오페라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안중근 손가락’은 당혹스런
충격으로 다가올 만한 혁신적 작품이다.
개막 전날인 4일 드레스 리허설을 보고 내린 결론은 이 작품이 오페라 제작과
감상의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주는, 성공적인 실험이라는 것이다.
무대는 새카맣고 바닥은 하얗다. 천정에서 칼날처럼 떨어져 바닥에서 꺾어지는
붉은 조명이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음악은 영상으로 처리된다. 현악6중주와 베이스 클라리넷, 첼로 주자가스크린에서
들어오고 나간다.
그들이 선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음향 덩어리에 가까운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거문고와 장구는 무대 위 즉흥연주로 참여한다.
이 작품은 연극 배우의 독백과 성악가의 노래가 나란히 진행되는 독특한형식을
취하고 있다.
독일인 사업가 역의 독일인 배우는 안중근 동상 앞에서 삶과 죽음에 관해 독일어로
중얼거린다.
네 명의 성악가-안중근, 안중근 어머니, 일본인 검사, 프랑스인 신부-는 각자
모국어인 한국어, 일어, 프랑스어로 노래한다.
이처럼 낯선 형식을 편안히 즐길 수는 없다. 관객은 폭력에 맞서 싸운 평화주의자
안중근의 사상과 더불어 죽음의 철학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서정적 선율과 극적인 구조에 푹 빠져서 보는, 전통적인 오페라 감상법은
이 작품에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15가지 이유를 밝히는 대목이나, 일본인 검사 역
소프라노가 일본무사의 죽음의 철학을 노래하는 대목의 치열한긴장감은 특히 인상적이다.
한국 극단 동임이 베를린의 헤벨극장과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독일인의 대본(알베르트
오스터마이어), 연출(프랑크 크루그), 스위스인의 작곡(하인츠 레버)으로 태어났다.
오스터마이어는 독일인의 시각에서 안중근을 조명했다. 독일인 사업가의 다분히
논쟁적인 철학적 독백을 통해, 민족주의자 안중근을 넘어선 평화주의자 안중근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오페라 ‘안중근 손가락’은 8일까지 한전아츠풀센터에서 공연된다.
출연 바리톤 김도형, 메조소프라노 김현정, 소프라노 기미코 하지와라, 바리톤
뱅상 피뇨, 배우 한네스 헬만. 오후 7시. (02)436-7142
오미환기자mhoh@hk.co.kr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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