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제목에서 알려주듯 이것은 일기인데
'자질구레하고 한심한 비밀들의 무더기'로 가득찬 내면의 일기journal intime이 아니라
밖에서 마주친 사물들, 동물들, 사람들로부터 오는 발견과 획득을 기록한 외면 일기journal extime이다.
이 아저씨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은 무의미한 명령처럼 느껴지는데
그 까닭은 나 자신처럼 재미없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창문을 열고 문 밖으로 나설 때 비로소 영감을 얻는다. 현실은 나의 상상력의 밑천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어서 끊임없이 내게 경이와 찬미를 자아낸다".
밖에서 많은 것을 접하면서도 아무 느낌이 없어지고
오로지 내 속의 무료함만이 뻗쳐올 때
미셸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그의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노라면
무뎌져있던 나의 시신경과 뇌신경도 잠에서 깨어날지 모른다.
또, 내가 보고 접하긴 했으되 미처 말로 끄집어내지 못한 것들을 쉽고도 정확한 미셸 아저씨의 언어로 다시 한번 접하는 것은
술취해 목마른 밤 꿈속에서 아무리 물을 마셔도 풀리지 않던 갈증이
잠에서 깨어나 냉장고를 열고 선 채로 들이키는 한 컵의 물에 씻겨내려가는 충족감에 비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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