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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화, 바로 그 유덕화다.
10년 전쯤 한국에서 실제로 유덕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전혀 호감이 가지 않았었다. 참 까맸고, 말랐고, 뾰족했고, 그리고 검은 정장과 검은 구두 사이에 맨발목-이었던 것만 기억난다. 그때만 해도 남자들이 정장구두를 맨발로 신는 패션을 본 적이 없어서, 타고온 밴에서 제일 처음 밖으로 뻗은 그 발의 맨발목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에 오니 도처에서 유덕화의 여러 모습과 마주쳤다. 높은 건물 꼭대기의 커다란 광고판에서 회색 내복을 입고 있는가 하면 (4대천황이 스타일 구겨지게 내복광고를 다 하고 말이지…), 영화채널을 틀면 좋은 영화 후진 영화 가릴 것 없이 수시로 등장하고 (4대천황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출연을 해서야…), 레코드가게에 나란히 진열돼 있는 여러 장의 앨범 재킷과 DVD 가게에 수도 없이 걸려 있는 영화 포스터…
그러던 어느 날, 한번도 중국극장에 못 가보았다는 말을 들은 중국친구가 나를 극장에 데리고 갔다. <천하무적 天下無賊>이라는 유덕화의 영화였다. 보통화로 더빙되어 있고, 중국어 자막이 깔리고, 그러고도 모자라 그 밑에 다시 영어 자막이 깔렸지만 대략의 줄거리만 이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날,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 유덕화의 사진을 아주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되었다. 영화 속 유덕화의 어느 한 모습에서 언뜻 어떤 얼굴을 본 듯했기 때문이다.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과연, 수많은 사진들이, 유덕화의 어떤 순간을 정지시켜놓은 수많은 사진들이, 내가 아는 어떤 얼굴의 한 순간과 겹쳐지고 있었다. 그게 누군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지만.
그때부터 무턱대고 그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4대천황이 아무데서나 내복을 입고 있는 모습도 가족같이 편안하고, 무료한 어느 순간 생각 없이 영화 채널을 틀면 기다렸다는 듯이 거기에 있어주는 것도 고맙고, 그리고 이젠 유덕화의 모습에서 언제든지 그 어떤 얼굴의 한순간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기가 끝나버려 하루 온종일을 나 혼자의 계획으로 채워나가야 했던 1월 어느날, 3장짜리 2004 유덕화 공연실황 DVD를 사들고, 그것도 빽판이 아닌 정판으로 사들고 들어와 춤추고 노래하는 깡마른 이 남자를 보고 있노라니 내가 저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 속에서 꺼내보고 싶어하는 그 낯설고도 익숙한 얼굴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누굴까? 그 얼굴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내가 요즘 새삼스럽게 유덕화의 빠순이가 되었다 뭐 그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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