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쓴사람 :
|
박혜림 |
|
|
쓴내용 :
|
김훈, 김영하 대담 |
|
|
|
|
|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8/200408150192.html
(여기 가면 동영상과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일독을 원하신다면 대담을 글로 정리한 아래의 기사보다 동영상을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우리 문학은 소진(消盡) 상태인가? 그것을 되살릴 가능성과 잠재력은 무엇인가? 14일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저자 김훈(56), ‘검은 꽃’ ‘오빠가 돌아왔다’(창비) 저자 김영하(36), 문단을 대표하는 두 장·청(長·靑)의 작가가 ‘한국 소설의 힘’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문학평론가 김동식(37)씨가 진행을 맡은 조선일보·교보문고 공동기획 ‘여름, 책의 향연’ 마지막(6번째) 행사에서는 ‘한국 소설의 미래’에 대한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
―산문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김훈,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김영하, 두 작가와 가벼운 얘기부터 진지한 얘기까지 자유롭게 논하고 싶다. 요즘 근황은 어떤가?
김훈=작업하느라 휴가를 못 갔다.
김영하=요전에 김훈 선생 작업실 찾았더니 ‘염천(炎天)에는 살아남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더라. 여름에는 휴가를 잘 안 가고 서울에 남는다.
―김훈 선생은 전국 각지를 자전거로 여행했고, 김영하씨도 자전거를 즐기는 것으로 안다. 글을 쓰기 위한 건강법인지, 몸에 주는 유쾌함은 어떤 것인지 알려달라.
김영하=김훈 선생은 자전거로도 선배고, 자전거에도 ‘적토마’ 같은 이름을 붙인다. ‘평생 차 한번 가져보지 못했으니 이 정도 사치는 누릴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문경새재·비무장지대 다 다니시는데, 나는 출·퇴근 같이 실용적인 데 이용한다.
김훈=한 7년쯤 탔는데 일산 집 앞 도로가 좋고 판문점·문산·임진강 나가는 길이 잘 돼 있다. 처음 타면서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게 있나. 지금껏 헛살았구나’하는 벼락 맞은 느낌이었다. ‘이걸(자전거)로 벌어 먹고 살아야 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무슨 배달 일 나가냐’고 하더라. 실제 그것 타고 벌어먹고 살았으니, 약속은 지킨 셈이고, 좋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올 가을에는 롤러스케이트를 배워 미끄러져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두 작가의 작품세계와 삶 속에는 무협소설이란 장르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공통점이 있다. 김훈 선생 선친 김광주씨는 한국최초 무협소설 ‘정협지’의 저자였는데 그 시절 삶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김영하씨는 ‘정치 무협’ 장르를 개척해 소설로 등단하기 전에 화제가 됐는데….
김훈=어렸을 때 부친의 말씀을 마치 신문기자처럼 받아 적었다. 그 일이 좋아을 리가 있겠나? 하지만 아버지가 (글을) 쓰셔야 우리가 밥을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웃음). 그것을 통해 문장 공부가 된 것 같고, 오랜 시간 앉아 받아쓰는 몸의 태도가 밴 것 같다. 문장의 흐름이 피와 뼈 속에 박히게 된 거 같다. ‘고쳐라, 바꿔라, 행 바꿔라’ 하시던 부친의 말투·동작이 아직도 기억난다.
김영하=무협은 생계와 관계가 있었고(웃음), 대학원 때 학비도 벌고 사고 싶은 거 사겠다는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했다. ‘대권무림’이란 월간지 연재 글이었는데, 쓰기 싫어 도망가기도 했고, 나중엔 원고지 1매에 1만2000원이란 파격적 원고료를 받고 썼다. 정치 무협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김영삼을 ‘공삼거사’로 해서 막 욕하는 것처럼 정치적 문제를 풍자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그 후 그런 무협이 많이 생겼다. 무협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겠으나, 문장은 어떻든 많이 쓰는 게 좋고 그때 정말 많이 썼다. 당시에 대선 구도가 복잡해 최후 마감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써야 했으므로 큰 도움은 안 됐을지 몰라도 속필을 배웠다.
―소설가로서 문체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문체는 사람’이라고 본다. 김훈 선생은 단문(短文)의 여백·속도감·유장함을 보여주는 대단히 매력적인 문장을 써서 ‘문장가’란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마치 세계와 맞서 싸우는 비장감을 보여주는 한편,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한 허무감이 묻어난다. 자신의 문체에 대한 생각은?
김훈=문체가 잘 된 문장이건 아니건 간에 그것은 나로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내면의 표현성의 표상이다. 잘 되고 아니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장의 바탕을 이루는 생각, 즉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하는 사유와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하는 영상이 중요하고, 영상과 사유를 어떤 리듬에 실어 전개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문장의 박자, 휘모리냐 중모리로 가느냐 같은 리듬이 확보되지 않으면 쓰지 못한다.
―김영하씨는 1990년대 중반 새로운 젊은 작가군이 등장했을 때 가장 주목받는 작가였다. CF·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속도감과 장면 전환에서 돌고래나 카멜레온을 보는 것 같은 명석함·민첩함을 느낀다. 문장과 문장은 느슨하고 비대칭적인 부분을 많이 사용한다. 하나의 형상을 다층적인 것으로 포착한다. 글 쓸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가?
김영하=처음 작가가 되려고 생각했을 때는 ‘문장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가능하면 안 보이는 문장이 좋고, 거의 소리나지 않는 문장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자들이 읽을 때는 문장이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읽고 나면 큰 상처·감동을 받고 ‘어딘가 당했다’는 느낌이 들게 하려면 문장이 안 보이게 하는 것이 궁극의 경지 아닌가 생각한다. 운동선수도 스윙을 많이 하면 불필요한 동작이 사라지고 경제적이고 자기 몸에 맞는 궤적이 생기듯, 문장도 계속 쓰다보면 언젠가 작가 몸에 잘 맞고 가장 경제적·효율적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고 본다. 문장은 작가가 다루는 어떤 수단, 이야기 달성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고 요즘엔 생각한다.
―김훈 선생 글은 한글이란 표음문자 밑에 웬지 상형문자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창작 과정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사물을 둘러싼 미묘·섬세한 움직임을 날카롭게 포착해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칼의 노래’를 쓰기 위해 현충사 이순신 장군 칼을 직접 관찰하는 식이었는데, 소설의 언어와 목소리는 서로 다른데 어떤 느낌으로 썼는지?
김훈=나는 물건을 눈으로 보지 않으면 글을 쓰기 굉장히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칼의 노래’ 쓸 때는 칼·투구·갑옷·구석기 유물·불도저·포클레인을 다 들여다 봤다.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책도 봤다. 내겐 굉장히 중요한 책이다. ‘화장’ 쓸 때는 여성지 화장품 광고도 유심히 보고 상상력을 얻었다. 한글은 과학적 문자지만 한국어 자체는 많은 표현 훈련을 쌓아야 하는 미숙하고 허약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진술하는 언어, 의견을 진술하는 언어가 일치하지 않는 개발도상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모국어의 엄청난 결점을 알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김영하씨는 영화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고, 영화보는 안목이 영화비평가에 비해 손색이 없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점을 많이 지적한다는 평을 듣는다. 영화나 다른 미디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김영하=사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생계와도 관련이 있다(웃음). 쓸 용의가 있는 사람인 건 맞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신성하게 생각하고 애정갖고 있는 분들과는 다른 시각을 확보한 측면이 있다. 영화는 지나치게 시간 제약을 많이 받는 장르고, 예술로서는 개인화가 덜 돼 있다. 모두가 모여서 2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드러눕지도 못하고 봐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로서는 개인화가 덜 돼 있다. 게다가 마케팅과 투자자가 필요하다. 소설은 작가가 ‘인생 망치겠다(인생을 걸겠다)’고 작정하고 혼자 하면 되지 않는가. 영화 100년 역사에서 상당한 탐사가 끝났고 이제는 새로운 시도가 전개되지 않을까 싶다. 책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인데, 영화는 책이 도달한 세계까지는 한참 걸릴 것으로 본다.
―김훈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김영하의 ‘검은 꽃’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국가와 개인의 운명이다. 예술과 권력, 국가와 개인의 긴장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훈=국가와 역사의 기초가 되는 가장 밑바닥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약육강식의 바탕 위에서 국가 문화가 이뤄졌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것은 돌칼 같은 무기와 살인·학살로써 가능했다. 불교문화는 그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적 질서가 있다. 나의 문학은 ‘인간은 개별적 존재’란 믿음 위에서 가능하다. 야만적 삶의 세계를 폭로하는 이순신·우륵, 두 사람은 내게 영웅이다. 폭력의 바탕 위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그것을 돌파하는가 하는 개인의 모습을 서술했다.
김영하=국가는 쓰기 어려운 부분이다. 요즘 국가를 다룬 소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제 안정적이고 얘기할 시점이 됐다는 뜻이다. 우리 역사엔 국가와 국민 사이에 행복한 밀월기는 없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 국가는 군역·공물을 요구하는 ‘산적’ 같은 존재가 아니었는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 중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우리는 여전히 국경의 지배를 받고 있다. 국가에 대해선 양면적인 감정이 있다. 웃으면서 타이르진 않지만, 자국민을 보호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유용한 산적’이라고 할까?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기에는 국가가 우리 삶에 개입하는 게 넓고 깊고 폭력적이다. 국가는 굉장히 딱딱하고 어려운 문제고, 그런 생각의 결과들이 소설로 나타난다고 본다.
―작가들은 ‘글이 너무 안 써진다”고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왜 하필 밥벌이 수단으로 삼는가? 언제 어떤 체험·계기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 됐는가?
김훈=글을 쓰는 일은 노동의 목표다. 소설 쓰는 목적이 돈을 벌어 밥을 먹기 위한 것이냐 하면 그렇진 않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럴 수는 없다. 내 글쓰기의 기본 태도다.
김영하=소설 쓰기는 다른 일과 다르다. 이제 등단 10년차인데 등단했을 무렵엔 세월이 흐르면 책상에 앉으면 바로 써지고 쓸수록 나아질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써도 써도 익숙해지지 않고 짤막한 글이라도 ‘이걸 꼭 써야 하나’ 하는 주저함이 생긴다. ‘6매 분량의 간단한 글인데 좀 써달라’는 식의 원고 청탁을 받으면 쓰기 싫어진다. 세상에 그런(간단한) 글이 어디있나. 어려움을 점점 깨닫는다.
(진행자 김동식씨는 두 작가의 답변을 듣고선 “밥벌이와 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예술, 예술이 되고 싶은 밥벌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가볍고 쉬운 답변 속에 한계 지점까지 밀고 나간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여유와 허무인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은?
김영하=빠르면 내년, 또는 내후년 나올 소설을 쓰고 있다. 국가와 개인에 관한 문제다. 하루 안에 일생을 정리해야 하는 인물이 20년 넘게 해 왔던 일을 정리하면서, 죄·업(業)과 모든 관계를 정리하는, 하루동안 겪는 일을 두툼한 장편으로 쓸 작정이다. 본격(순수) 문학과 대중문학 차이가 뭔가 고민하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예술로서 소설의 특징은 실패한다는 데 있다. 대중문학은 실패하지 않는 선에서 고만고만하게 끝나고 궁금증도 안 생기지만, 생명력있는 소설이란 작가가 어떻게든 밀어붙여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로서의 소설은 과감하게 실패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그런 정신인 것 같다. 실패하더라도 밀어붙이자는 생각에서 집필 중이다.
김훈=앞으로 많이 쓰진 못할 거다. 서너편? 다섯편 미만인 것은 확실하다. 다섯편 다 쓰면 자연사하던지 할 테니, 기어코 그것만 쓰겠다. 김영하씨가 말한 것처럼 흔적·자취 없는 문장을 쓰고 싶다. ‘그 자취 없는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웃음). 대중성 얘기가 나왔는데 자신의 힘으로 대중 독자를 확보하지 않는 한 우리 문학은 희망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문학이 오직 자신의 힘으로 대중독자를 확보해야 한다. 우리 문학의 특징은 단절에 있다. ‘이광수’는 이 시대에 연구자들만 읽고 있고, 세대가 지나면 우리 중견작가들도 독자들로부터 단절돼 박물관에 갈 것이다. 다음 세대가 이문열·이청준의 글을 읽어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자라나는 세대, 젊은 세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단절을 극복해야 한다.
김동식씨는 “예술성으로서 소설을 포기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가능성을 탐색하며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는가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였다”고 정리했다. 행사 끝무렵엔 객석의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독자가 김훈씨에게 “기자 체험을 살려 현실과 관련된 소설을 쓸 생각은 없는가”를 묻자, 그는 “기자 체험 모든 게 문학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고, 거의 없거나 극히 일부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전체가 실패한 시대고 기자로서도 실패한 시대였다. 자기가 세상을 밟은 발바닥의 흙을 다 내보이는 것은 졸렬한 것이고 앞으로 당대 현실에 대한 소설을 써보려고 하지만, 내 역량에 속하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영하씨는 “영화나 소설 모두 대중들에게 다가서려는 예술 아닌가”라는 질문에, “소설과 영화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성격이 다른 장르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영화로) 변환이 잘 안 되는 게 좋고, 야심있는 작가라면 변환되지 않는 방향으로 작품을 쓰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김훈씨는 한 청중이 “작품 ‘칼의 노래’와 ‘노무현 신드롬’의 관계”를 묻자 “그 전부터 꽤 잘 팔리는 책이었는데 (노 대통령이 방송에서 ‘칼의 노래’를 애독서라고 한 뒤) 조금 더 잘 팔린 것이고 청와대에 감사의 말을 전한 적은 없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또 “글을 쓸 때 연필로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컴퓨터는 우리 세대를 길러준 문화의 동향과 관계가 없어 배우려 하지 않는다. 연필로 쓰는 것은 낙후된 것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힘이 들어가고 내 몸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팔의 느낌으로 알수 있으니까 신뢰할 만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