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원래 미호가 살던 집이었다.
집을 비워주고 다른 집으로 이사간 미호가 이집에 새사람이 들어온 걸 알고 어느 날 불쑥 찾아왔었다.
비가 오면 베란다에 물이 새니까 양동이를 받쳐놓아라, 세탁기를 쓸 땐 싱크대를 열고 이렇게 호스를 교체해라, 이러쿵저러쿵... 벙어리이자 귀머거리인 내게 이 모든 것을 시연해 가면서 이집의 주의사항을 알려주고는 손가락만한 손전등을 건네주었다.
이게 뭐람?
손전등의 용도는 금방 밝혀졌다.
아파트 복도에 불이 전혀 안 들어와서 밤에 귀가할 땐 그야말로 더듬더듬... 올라갈 땐 그래도 나은데 내려갈 땐 잘못하면 실족해 다칠 지경이었다.
어쩌다 손님이라도 오면 어찌나 민망했던지...
그래서 가방 앞주머니에 항상 그 손전등을 넣고 다녔는데
오늘 저녁을 먹고 나서 배나 꺼트릴까 하고 집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해가 진 지 오래인데 현관 밖 복도가 대낮처럼 환했다.
누가 달아놓았을까.
알전구 하나 달려있는 것이 이렇게 발걸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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