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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내 신경을 곤두세우던 소리는 베란다 물받이통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였다.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으로 들어온 빗물이, 그 부적절한 빗물이 적절한 자리에 놓인 물받이통으로 떨어지는 소리. 두 개의 자명종이 동시에 울려도 듣지 못하던 나는 그 부적절한 빗물 떨어지는 소리엔 벌떡벌떡 잘도 일어났다. 모처럼 해가 쨍쨍해서 빨래까지 한 오늘, 낮에 한 빨래가 거의 말라버린 이 밤, 비도 안 오는데 또 집안 어딘가에서 나를 곤두세우는 소리 - 벌레였다. 어찌나 무섭게 벽으로 돌진하며 요란한 소리를 내던지... 잠시 땅에 착지한 순간을 노려 간신히 종이컵을 덮어두는 데 성공했다. 벌레에 컵 씌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따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안 보는 편이 좋았을 어떤 영화를 보고 부적절한 감정에 빠져 $%^&*&^###$한 채로 앉아 있는데 또 나를 곤두세우는 소리. 부엌인데....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찾아낸 그 부적절한 소리의 진원지는 온수기. 높은 곳에 매달린 온수기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나는 온수기에게 소리를 내어 말해주었다. 내가 졌다... 이로써 이 집에서 물과 관련된 모든 곳이 한번씩 다 터져본 셈이다. 하긴 물과 관계없는, 심지어 중국어로는 '볕의 단'이라는 뜻을 가진 베란다마저 터져서 새고 있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그러니까 옆에 옆에 동에 사시는 외사처 박선생님이 출근하시기 전에 전화를 걸어 이 문제의 해결을 요청하기 위해 나는 오늘 밤을 새울 작정이다. 이 시간에 잠들어서는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없으니까. 내일... 온수기 수리와 거류증 및 여권 돌려받기와 비행기표 구입... 이걸 다 해낼 수 있을까. 이 집을 혼자 놔두고 나만 서울로 가버리면 집이 터져버리거나 녹아버리거나 암튼 엄청 큰일이 생길 것만 같다. 정말이지, 내가 졌다.... 서울집에 갈 마음이 전혀 안 생기니. 전구가 아니라 전선이 나가버린, 그래서 적절한 타이밍에 불을 켤 수 없는 화장실 전등 따위는 이제 신경도 안 쓰인다. 부적절한 관계가 되겠지만, 다음 학기엔 수리공이랑 동거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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