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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청도는 안개도시다.
한국에서 나는 한번도 안개를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그랬다.
그래서 낭만적인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안개 속을 걸어보니 숨막히고 텁텁하고 맛없다.
가끔 문이 열릴 때 이상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나는 도저히 못 들어갈 목욕탕 한증막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덥지 않고 춥다는 정도.
뼈가 시리다.
어느 중국인 왈, 지금 청도는 동북 하얼빈보다도 춥단다.
집이 냉골이라 더운 공기라도 채우려고 에어컨을 틀었더니 묵은 냄새가 흘러나온다. 안개 냄새랑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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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하려고 선희네 집에 갔던 어제 오후,
선희네 창 안에 서서 창 밖의 안개를 구경하다가 문득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고 왔다는 생각이 들어 낮잠자는 선희에게 메모 한장 남기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베란다가 아니라 이집 창문이란 창문을 다 열어두고 나왔어도 돌아오지 말고 그 집에서 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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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 코트 깃을 세운 후 안개를 뚫고, 저~~~~기 구시가지쪽에 있다는 외국서점을 찾아갔다.
거기에도 莎士比亚는 없었다. 한 권 있었는데 팔렸다나 어쨌다나...
서점아가씨가 청도에서 제일 큰 서점인 書城에 가보란다.
책꽂이를 헤집어보니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도 있고, 마리오 푸조의 대부도 있고, 심지어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있고, 더구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있는데 왜 莎士比亚는 없는 걸까.
청도에서 제일 큰 서점에서, 청도 유일의 전국 중점대학 도서관에서 이 나라 한국어학과 학생의 고충을 마음 깊이 헤아렸던 이 外敎는, 오늘 청도 유일의 외국서점에서 이 나라 영어과학생의 고충까지 헤아려버리느라 나 자신의 고충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上海 여행 가이드북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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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염색한 후라 머리를 못 감은 지 사흘째 되던 날 회사에서 하루종일 찝찝함에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누가 근사한 저녁을 쏘겠다고 했다.
아깝지만 난 집에 머리감으러 일찍 가겠다고 하자, 더럽게 왜 머리는 안 감고 와서 비싼 밥을 놓치냐고 타박하더라.
그래서, 미용사가 염색 후에는 이 시간까지 머리를 감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항변했더니 그쪽 대답이 이거였다.
당신이 언제부터 그렇게 남의 말을 잘 들었어?
그때 일이 다시 생각났는데, 난 기본적으로 말 잘듣는다.
특히나, 지시사항이 구체적일수록 잘 따른다.
48시간 동안 머리를 감지 마세요, 12시간마다 저민 생강을 우려낸 미지근한 물로 약을 드세요, 매일 30분씩 운동장을 뛰세요.... 이런 말은 시키는대로 안 하면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보지 그래, 많이 보고 많이 느끼길 바래,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지, 자신감을 가져...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오고 말이다.
아무래도 청소년기를 잘못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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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생긴 일>은 18회까지 본 후에야 마지막 2회분 CD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점심 먹다가 CD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하지원이랑 소지섭이랑 이렇게 한침대에 누워있는데, 조인성이가 권총 사들고 와서 둘 다 죽이삐요. 하지원이 총 맞아가 죽어감서 조인성한테 그라제.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오.... 조인성이도 바닷가 가 그 권총으로 자살하고.
그럼 박예진은요?
누구?
박예진이요.
누구?
다 죽나요? 넷 다?
넷 다 죽던가?
넷 다 죽거나 셋만 죽거나, 어쨌거나 발리.. 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는 얘기란다.
옛날 같았으면 나도 발리 폐인인지 뭔지가 됐을라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이런 말이 가슴에 꽂히고 그랬으니까.
이젠 그냥, 죽을 때까지 살아남는 일이나마 어떻게든 해내야지 싶다.
가끔 사랑할 기회가 와주면 감사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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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웬종일 물이 줄줄 새고, 심지어 최근 받침대 부분에 금이 쩍 가버린 쓰러지기 직전의 변기를(나는 옹녀인가?) 드디어 교체했다.
교내수리센터에 전화해서 인부 불러 수리시키다가 교체해야 할 것 같아서 결국 학교 비용으로 교체해냈다.
공사중인 내 집에 마침 외사처의 조선족 선생님이 들르셨다가 혼자서 이 모든 걸 해내고 있는 훌륭한 나를 감탄의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혼자 전화했어여? 중국말로? 중국 인부들은 불러도 잘 안 오는데~? 와도 잘 안 고쳐주고 가버리는데~?.
그러고 보면 내가 생존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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