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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만난 공중총각(중국어로는 空哥란다. 공중오빠...)이 몇 번 전화를 해서 한번 만났다.
내가 필드에 나가본 지 하도 오래돼서 잊었는데 전화번호는 교환하는 게 아니다. 내것만 주는 건 더더욱 아니고, 상대의 것만 받아와야 한다. 그래야 내 맘대로 연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바닥에서 연락은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즐거움이니까.
그윽한 데라곤 하나도 없는, 공중오빠의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는 그의 미모를 깎아먹기에 충분했다. 미모 또한 다시 들여다보니 너무 동안이라 내 취향도 아니고 말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남자는 얼굴보다 음성이 섹스어필하다. (나만 그러냐? 그렇다면 한때 한석규가 한국여성을 사로잡았던 이유는 뭐란 말이냐)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멋진 음성은 대학 1학년인가 2학년 때 서강대 인문관 교수연구실 복도에서 들었던 소설가 최윤, 불문과교수 최현무 선생님의 음성이다.
문화부 기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대학 때 학보사 일도 하고 학과 선전부 일도 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기자가 되려거든 그딴 짓 하지 말고 영어/상식 공부를 해야 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뭔가 꺼리가 있어서 최윤 선생님을 인터뷰하러 찾아갔던 것이다.
약속을 하지 않고 일단 찾아갔던 선생님의 연구실은 비어 있었다.
난감해 하며 잠시 그 앞에 서 있으려니 복도 끝 화장실에서 한 손에는 비누곽을, 한 손에는 떨어질랑말랑하는 물방울을 매달고 선생님이 걸어나오셨다.
비누곽과 물방울 때문에 두 팔을 낮게 벌려든 자세로, 아직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잠시 멈칫하며,
나를 찾아왔어요?
라고 말하던 선생님의 음성이 텅 빈 복도 가득 깔리며 서늘하게 울려퍼졌다.
저쪽 끝에 뚫려 있는 창문으로는 한낮의 태양이 쨍쨍했지만, 구조상 늘 어둡고 서늘했던 그 복도의 공기에 울림이 깊은 선생님의 음성이 배어들자 선생님은 이미 말을 끝냈는데 그 음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한 환각이 느껴졌다. 일종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환각 체험이었고 나는 가슴이 설렜던가 떨렸던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자신의 음성에 대한 코멘트는 딱 두 번 들어봤다.
1. 시골 처녀 분례의 목소리다.
2. 배두나랑 비슷한 목소리다.
섹스어필과는 거리가 먼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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