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에 마르코폴로가 항주에 들렀다가 그랬단다. 항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으며, 마르코폴로씨의 취향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그후로 7세기가 지나도록 중국 사람들은 이 말을 우려먹으며 항주 경제를, 특히나 숙박업을 키워가고 있다.
뭐 그렇다고 항주가 아름답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중국땅에서는 '천하 제일, 세계 최고, 지상 최대' 이런 표현을 깎고 깎고 깎아서 들어야 한다, 뭐 이런 뜻이다.
항주 가는 길은 출발이 순탄치 못했다. 저 앞 어딘가에서 교통사고라도 났는지 항주 방향 도로는 주차장이었다. 답답해하던 한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그러자 다른 차에서도 사람들이 따라내렸다. 고속도로에서 내려보긴 처음이다. 정체가 풀린 후 차를 달리며 확인해 보니 교통사고가 맞았다. 이 사고를 시작으로 1박2일간의 항주여행에서 교통사고를 도합 7,8건은 목격한 듯하다. 중국에선 정말 차조심해야 한다.
  
항주 시내에 들어선 후에는 서호西湖찾기가 쉽지 않았다. 항주는 그저 서호다. 서호가 항주고 항주가 서호다. 지도를 보면 항주 시내의 상당 부분이 서호이고 항주에 간다는 것은 서호를 보러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서호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마침내 서호를 찾아내기까지, 한스는 항주 시내 웬만한 도로는 다 외울 지경이 되어 있었다.
서호를 둘러싼 길은 굵고 무성한 나무가 풍성하게 들어서 있다. 인민들만 없으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중국의 관광지에선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경치 좋다... 중국 인민들로 미어터지지만 않으면 정말 아름답겠다... (남의 나라에 구경와서 이런 소리 하면 인민들이 다 째려보겠지.)
서호 뱃놀이 - 바람이 강한 날은 배를 띄우지 못한단다.
여기는 서호의 소제蘇堤. 소동파가 쌓은 제방이란다. 소제에서 지도를 들여다보며 어떻게 서호를 찜쪄먹을까 고민하는 한스의 뒷모습.
(서울 역삼동에 八先生이라는 중국요리집이 있다. 무지하게 좋아했던 곳인데 거기 동파육이라는 요리가 있다. 소동파가 만든 요리라는데 삼겹살을 가지고 만든 거다. 항주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 이 동파육을 시켰는데, 역삼동 八先生에선 고급스런 맛이었던 것이 막상 본고장인 항주에 와보니 싸구려도 이런 싸구려가 없더라. 역삼동 八先生이 그립다.)
고속도로에서 낭비한 시간이 적지 않고, 시내에서 서호를 찾기까지 걸린 시간이 만만치 않았던지라 서호에 도착해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소제를 좀 걷다보니 이미 해가 떨어지고 밤이 깊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차를 타고 서호 주변을 돌았는데 길을 몰라서, 혹은 길이 좋아서 나무가 무성한 그 길을 따라 산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용정차龍井茶로 유명한 용정로까지 아주 높이, 깊이 올라갔다. 어두워지면서 인적이 드물어졌고 창문 밖의 나무들은 진한 향기를 뿜어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백만불짜리 삼림욕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항주에서 보낸 시간 중에 이 저녁 시간의 드라이브가 최고였다.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시간... 한스와 나로 하여금 아, 여기 나가기 싫다, 내일 꼭 다시 오자... 이런 말을 번갈아가며 여러 번 하게 만든 곳이다.
한스가 아는 사람-李先生이 항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분과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웠던 길을 떠나왔다. 그분과 소제蘇堤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소제를 찾아 차를 달리는데, 앗, 엔꼬~! 기름없음에 불이 들어왔다. 소제까지 가서 李先生을 만나고 그분을 태워 나오면서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넣으면 되겠지,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는데 문제는 서호는 너무 크고, 소제까지 다시 찾아가기가 쉽지 않더라는 것이다. 길을 잃고 똑같은 곳을 몇 바퀴씩 돌고, 길은 막히고, 또 길을 잃고 빙빙 돌고, 李先生을 어렵게 만나긴 했는데 李先生이 주유소의 위치는커녕 항주 지리도 잘 몰라서 역시 또 헤매고 돌고 헤매고 돌고 주유소는 안 나타나고 배는 고파 죽겠고... 여기까지 와서 자동차 밀게 생겼다라는 생각을 여러 번 여러 번 반복한 후에야 간신히 주유소를 찾아냈다.
기름 넣고, 밥 먹고, 호텔을 찾으러 갔는데 대략 대여섯 개의 호텔이 모두 빈방 없음! 꽥~~~!!! 그런데 두 남자가 술을 먹으러 가잔다. 만약 호텔을 잡았더라면 두 분 드시고 오세요, 할 수 있었을 텐데, 죽겠더라. 따라갔다.
술집 이름은 流金羅月. 술집 한복판에 패션쇼장처럼 길게 뻗은 높은 무대가 있다. 여자들이 그 위에서 쇼도 하고 노래도 하고 남자들도 노래한다. 무대를 에워싼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좀 조용한 장소를 원하는 손님들을 위해 벽을 따라 방이 있다. 방문은 유리문이라 밖의 무대를 볼 수 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 위에서 쇼를 하던 여자가 무대를 내려오더니 우리 방에 들어와 술을 한잔 얻어마시고 나갔고 또 다른 여자가 무대에서 내려와 우리 방에서 술을 얻어마시고 나갔다. 이 술집의 시스템이 그때쯤 파악이 됐다. 여자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후 시간이 빌 때 손님 테이블을 찾는다.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마신다. 손님들이 지분거리는 분위기는 아니다. 손도 안 댄다 - 라고 두 명의 李先生이 강조했다. 이 과정을 통해 여자들은 손님들과 안면을 트는데, 그런 다음 다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을 추는 시간이 돌아오면 이 여자들이 맘에 드는 손님들이 무대 위로 꽃을 보낸다. 꽃은 거대한 조화 화분이다. 웨이터한테 ‘저 여자한테 꽃 보내라’ 이러면 무대 위로 조화 화분이 올라간다. 그러면 손님 계산서에 100원이 추가되고, 그 100원중에 4,50원 가량이 여자한테 가고 나머지가 술집 몫이 된다. 그러니까 아가씨에게 주는 팁이다. 이런 식으로 팁이 지불되는 것을 이전에 북한요리집에서 본 적이 있다. 최근 중국에는 북한요리집이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아가씨들이 테이블 서빙과 춤과 노래를 동시에 한다. 테이블에서 전골 냄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마이크 들고 올라가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후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아까 뒤적거리던 전골을 개인접시에 담아주고... 이러는 거다. 내 테이블을 담당하는 언니가 노래를 할 때 꽃을 보내주기도 하고, 유난히 가무에 능하고 미모가 뛰어난 언니가 있어도 꽃을 보낸다. 한스는 이 시스템이 ‘건강한’ 것이라고 했다. 아가씨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고 꽃을 보내는 방식이 말이다. 왜지? 아가씨한테 직접 주면 100원이 다 아가씨 것이 되지만 꽃을 보내면 아가씨가 4,50원밖에 못 가져가는데? 암튼 그 건강한 술집에서 세명이 포도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그리고 李先生의 사무실 겸 집으로 갔다. 李先生은 사무실에서 먹고자고 하는 모양이다. 사무실에 침대가 4개나 있더라. 자기가 쓰던 독방을 나에게 주고 한스와 李先生은 중국 직원들이 쓴다는 냄새나는 침대에서 잤다. 미안하고 고마워라... 상해에선 한스의 골프 코치 침대에서 자고 항주에선 李先生 침대에서 잔다고 한스가 나더러 몸 좋아질 거란다. 하지만 잠자리가 낯설어서 거의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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