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레터] 우울한 ‘디 아워스’의 하루
‘디 아워스’(The Hours)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연결고리 삼아 1920년대 실존 작가 버지니아 울프, 1950년대 가정주부 로라, 2000년대 출판사 편집자 클래리사의 삶을 서로 엮는 작품입니다. 뛰어난 완성도의 이 영화는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로 올라 화제를 모았지요.
사실 이 영화는 영원처럼 반복될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단 하루씩만 베어냄으로써 세 여인의 삶을 요약하려는 화술 때문에 관객의 감정이입이 쉽지 않습니다. 인물들 마음 속에 일렁이는 슬픔을 그저 묘사만 할 뿐, 그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지요. 지나온 날들 그리고 이어질 날들과의 관계를 제거해버린 그 어떤 하루가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디 아워스’는 왜 소통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화법을 쓸까요. 그것은 혹시 원작자 마이클 커닝햄과 감독 스티븐 달드리가 하루와 일생의 관계를 일종의 ‘프랙탈’로 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기유사성과 순환성을 속성으로 하는 ‘프랙탈’(fractal)은 1960년대 말 수학자 만델브로트가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이는 세부구조가 전체구조를 반복하고 있는 형상을 뜻하는 말이지요. 해안선이나 브로콜리의 모양처럼, 아무리 작게 범위를 한정해 관찰해도 미세한 부분이 전체의 모양과 비슷한 모습을 끊임없이 되풀이할 때 사용됩니다.
‘디 아워스’는 견디기 힘든 세 여인의 하루가 사실은 삶 전체의 축약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그 하루의 수십년에 걸친 반복이 한 사람 삶이고, 그런 삶들의 끝없는 이어짐이 영원이라고 암시하는 듯 합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세 여인의 슬픔은 어느 하루에 솟아난 짜증과 우울이라기보다는, 삶과 시간 전체를 짓누르는 권태와 절망으로 읽힙니다. 이 영화는 영원이 지겨워 하루를 선택했지만, 그 하루 속에서 영원의 그림자를 재발견하고 절망하는 사람들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세 여인은 생일 잔치에서 수상 축하 파티까지,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각각의 행사들은 갖가지 비극적 돌출 변수로 계획이 어긋나고 맙니다. 준비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탄식이 작품 속에 깊게 배어 있는 셈이지요.
소설가 리처드가 창문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옛 애인 클래리사와 대화 나누는 장면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리처드가 그를 위한 파티에 가기 싫어하자 클래리사는 “오지 않아도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리처드는 “파티 뒤에 또다른 시간이 있고 그 뒤에 또다른 시간이 있다”며 진저리를 치지요. 그의 절망은 결국 시간에 대한 절망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보면 울프가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가 삶을 마감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 놓인 듯 합니다. 강물 흐름만큼 세월에 자주 비유되는 것은 없으니까요.
아름답지만 지독히도 염세적인 이 작품은 결국 1인분의 삶을 살아내는 게 얼마나 힘겨운 싸움인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영화를 다 보아내고 극장을 나설 때, 자연스레 차가운 바람에 실려오는 것은 시인 엘라 윌콕스의 탄식입니다. “웃어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요, 울어보라 너 혼자 울겠지. 이 낡고 서글픈 세상에선 환희는 빌려야 하고 고통은 너무 많으니까.”
(이동진기자dj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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