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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중국어 개인교습을 받는 날이었다.(요즘엔 이런 것도 한다. 이 나이에 과외를 받게 될 줄이야.)
어쨌든 나의 과외선생인 중국 학생이 토요일인 오늘 오전에 자기 친구랑 타이동台东(한국의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쯤에 해당하는 유명한 도깨비 시장이다)에 간다며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외국어를 배우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이런 제안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거절하기는 커녕 억지로라도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바둥거려야 한다. 외국어를 책상 앞에서 배우는 것은 차선책이고 최선책은 당연히 생활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러마 했다.
어젯밤에 윗층에 살고 있는 JICA 단원 나오코가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이미 중국어를 꽤나 잘한다. 오늘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잔다. 나오코랑, 미호라는 또 다른 일본인 교수와 야마시다라는 일본인 유학생 그리고 아직 만나본 적 없는 한국인 유학생 - 이렇게 다섯이서 한국 식당에 고기를 구워먹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국적으로 모임을 가지면 응당 중국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또 다시 언어 실천의 기회가 저절로 생겼으니 마다하면 안 된다. 게다가 나는 고기 귀신이니 입 하나로 공부도 하고 맛난 것도 먹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토요일인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과외선생 위에싱月杏과 그녀의 친구 아무개(들었는데 까먹었다)와 함께 타이동台东으로 갔다.
위에싱의 친구가 청바지를 사겠다고 해서 같이 고르러 다녔는데, 그래, 언어실천 많이 했다.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보통의 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중국의 보통 대학생들이 먹는 음식도 같이 먹었다. 그런데 정말 죽도록 피곤했다. 원래 한국에서도 다리품 파는 쇼핑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었던지라 그렇잖아도 어수선한 중국에서 한층 더 어수선한 도깨비시장을 누비고 다니는 일이 나이 서른 넘은 내겐 죽도록 피곤한 일이었다.
타이동에 새로 들어선 월마트가 쇼핑의 마지막 코스였는데 아직 대학생인, 그러므로 팔팔한 그들이 물건 하나하나를 신기해하며 들여다보고 살까말까 들었다놨다하며 내게 이거 어때, 저거 어때, 이건 이렇게 쓰는 물건이야, 저건 저렇게 쓰는 물건이야 - 언어실천을 행하는 동안 피곤한 몸은 무너질 것 같고 외국어를 알아듣기 위해 집중하느라 점점 팽팽해지는 신경은 끊어질 것 같았다.
집에 간신히 돌아왔을 땐 이미 오후 3시가 넘어있었다.
쓰러져 낮잠을 자고 5시30분이 되었을 때 약속장소인 유학생센터에서 나오코, 미호, 야마시다, 그리고 한국 유학생과 만났다.
사실 고기고 뭐고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오늘의 언어실천은 이미 보통 때의 사나흘치 분량을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택시를 잡아타고 찾아간 식당에서 고기가 구워지기 시작하자 조금 의욕이 생겼다. 열심히 집어먹으며 원래 한국에선 고기를 먹을 때 이렇게 먹지 않구 어쩌구 저쩌구 수다를 떨며 진짜 많이 먹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못 먹은 지 오래돼서 잊고 있었나 보다. 배가 너무 불러도 몸이 피곤해지고 머리가 멍청해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나오코, 미호를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잊고 있었나 보다. 네이티브 중국인이 하는 중국어보다 일본인이 하는 중국어가 알아듣기 훨씬 골아프다는 사실을.
배가 불러 부대끼고 일본인의 중국어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신난 이들이 집에 갈 생각을 안 하고 술을 한잔 하잔다.
아이구...
물론 덕분에 그동안 한번도 못가봤던 산뜻한 지우바酒巴를 하나 개척했다. 평일 오후 애매한 시간쯤에 혼자 와서 커피라도 한잔 시켜놓고 책을 보면 딱 좋을 분위기의, 하나쯤 알고 있어야 할 장소였다.
술집에 와서는 일본어와 중국어와 한국어가 뒤섞여 날아다녔다. 너무 피곤한 상태라서인지 이미 끊어져버린 신경줄은 때때로 이것이 일본어인지 중국어인지도 분별하지 못했다.
아이구 아이구....
게다가 밖에선 비가 만만찮게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집은 저렇게 비 많이 오면 새는데... 이런 것까지 생각하느라 거의 넋이 빠질 무렵 술자리가 정리됐다.
중국에 왔으면 마땅히 중국어의 생활 속으로 던져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걱정했다. 나는 맨날 한국말만 해, 어쩜 좋아 어쩜 좋아...
그러나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자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
이거야 말로 어쩜 좋아 어쩜 좋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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