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너무 추워서 그리고 너무 코가 막혀서.
전기장판 온도를 최대로 올리고 수건을 적셔서 침대 옆 책상 의자에 걸었다.
도대체 난방은 언제부터 시작하려나.
아무리 돈이 없어도 이놈의 비염 때문에 가습기를 하나 사야지 안 되겠다... 그러면서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니 그럭저럭 추위가 누그러진 듯했다.
기분도 우울하고 해서 치마를 입고 중국어 학원에 갔다.
갑자기 바람이 어찌나 불어대던지, 얼어 죽는 줄 알았다.
학원 선생님 왈, 청도시는 11월20일에 일제히 난방을 시작한단다.
민방위 훈련 하냐, 한 도시가 일제히 한날 한시에 난방을 시작하게...
하여튼, 이럴 때 공산국가라는 느낌이 팍팍 든다.
열흘이나 기다려야 그 잘난 난방이 들어온단다.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난방이 시작되었는데도 추우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학원 끝나고 길 건너 JUSCO라는 쇼핑몰에 갔다.
프린터 잉크가 다 떨어져서 하나 사야 했다. 물론 가습기도.
프린터 잉크가 무슨 보물이라고 진열장에 넣어두고 자물쇠로 채워뒀다.
별꼴...
종업원을 불러서 내가 쓰는 프린터기 모델명을 알려주었는데 이 인간들이 어떤 잉크를 써야 하는지 도대체 찾지를 못한다.
그래서 프린터기는 어디 있냐, 거기서 내가 쓰는 프린터기를 찾아보겠다 - 했더니 JUSCO엔 프린터기가 없단다.
컴퓨터는 팔면서 프린터기는 안 판다구?
별꼴...
그 추운 날씨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대략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서 까르푸에 갔다.
까르푸에서는 내가 쓰는 그 프린터기를 팔고 있었다.
종업원을 불러서 내가 쓰는 모델을 가리키며 이 프린터기에 쓸 잉크가 필요하다고 했다.
종업원은 눈물나게 친절했다. 그리고 눈물나게 답답했다.
그 역시 무슨 잉크를 써야 하는지 찾지 못했다.
게다가 나더러 미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머리 염색을 했고 모자를 눌러 쓰긴 했지만, 종종 내게 미국에서 왔냐고 묻는 중국인들을 만나면 기가 막힌다.
잉크나 찾으셔~ 라는 표정으로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갑자기 한국어 연습을 시작한다.
민간외교사절로서의 품위를 생각해 한번 씩~ 웃어주고 잉크 사기를 포기한 채 돌아섰다.
다음은 가습기.
좀 괜찮게 생긴 건 겁나게 비싸고 가격이 맞는 건 겁나게 촌스러웠다.
촌스러우면 어떠랴.
가습기랑 연애할 것도 아니고.
제일 싼 걸로 결정하고 종업원을 찾는데 아무도 없다.
에라.. 전시품 아래에 있는 박스를 하나 들고 가서 계산대에서 돈을 치렀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종업원.
내가 산 건 고장난 가습기란다.
그 최저가 가습기는 지금 완전 매진이라나.
그럼 돈 돌려주세요, 했는데
30초 전 그 자리에서 낸 돈을 돌려받는 데 30분이 걸렸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을 해와도 그렇게 서류 작성이 복잡하진 않을 거다.
그깟 200원짜리 가습기 하나 환불하는데 적으라는 건 뭐 그리 많고
여기저기 들러야 할 사무실은 어찌나 많은지.
민간외교사절로서의 품위도 망각한 채 버럭 화를 내버렸다.
뭐 하는 거야! 나 지금 무지 바쁘단 말이야!!!!!
내가 화를 내거나 말거나 별 의미도 없어보이는 웬갖 서류 작성에 여념이 없는 종업원.
진이 쫙 빠져서 결국 택시를 타고 말았다.
이제 웬만하면 택시는 안 타겠노라 결심했었는데..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갔는데
또 물이 안 나온다.
아, 젠장...
중국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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