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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시간에 이 멋대가리 없는 빌딩의 흡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나를 마주보고 후까시를 잡는다는 것이다.
밤기차의 유리창이 기차 내부를 비추는 반사경이듯
흡연실의 밤은 바깥 세상 대신에 흡연자를 반사한다.
나는 서른살이고
지난 여름에 비해 머리가 많이 자라 있다. (내 모든 것의 시작점은 지난 여름이다)
며칠 전 새로 갈아끼운 귀고리가 은빛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반사된다.
이제 나의 귓볼은 어설픈 손으로 들이미는 새 귀고리를 받아들일만큼 길이 트였다.
머릿속엔 월요일에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일들이 적힌 to do list가 구겨져있고
그래서 나는 금요일 밤시간에도 이 빌딩을 벗어나지 못했다.
흡연실은 이 시간 내가 도망나올 수 있는 반경의 최전방이다.
나는 믿고 있는 상사에게 '네가 너무 무르고 약해서 걱정이다'라는 애정어린 걱정을 들을 만큼
무르고 약하다.
요즘 들어서야 나는 이렇게 치이다 보면 단단해지고 독해지는 것인지, 아님
인간은 평생 타고난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아마도 전자이리라.
그러니 아가씨가 아줌마가 되고 소년이 아저씨가 되는 것이겠지.
언제쯤, 얼마나 단단해지고 독해질 수 있을까.
어쨌든 나에게도 희망은 있다.
누군가는 회사에서 마음을 떼어낸 후에도 회사에 나오면서
새로운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고 유학준비를 위해 밤마다 학원에 다닌다.
한바퀴를 빙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결국 나 하나다.
나를 그렇게 붙잡고 늘어졌던 사람이 나에게 말한다.
어디서 좋은 job offer를 받으면 미안해하지 말고 여우처럼 결정하라고.
한바퀴를 빙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나는, 아찔하다.
높고 좁은 곳에 간신히 서 있는 나는, 균형이 잡힐 만하면 외롭고
생각이 깊어질 만하면 휘청댄다.
지난 이틀간 나의 메신저 닉네임은 '궁리'였다.
이제 살 궁리를 해야 한다.
가질 수 있는 것을 갖고 싶어해야 하고, 단단해지고 독해져야 하며, 여우도 되어야 한다.
to do list는 업무노트에도, 일기장에도 모두 다 빼곡하다.
그야말로 Just do it이다.
그냥 해,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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