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쓴사람 :	박혜림
	쓴내용 :	과거의 나에게 묻는다

간밤에 또 아팠다.
원래 강골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빈번히 몸으로 인해 고통을 받다니.
기록적이다.

어제 나는 아주 조금 먹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대여섯 숟가락의 밥과 역시 대여섯 숟가락의 국물을 떠먹었을 뿐이다. 그리고 점심 겸 저녁으로 중국의 길거리식품 전병과자를 사먹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목구멍이 조여왔다. 정말로 괴로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힘들었다. 소화제를 한 알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와서가 아니라 잠들고 싶어서였다. 잠들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니까.
겨우 잠이 들었을 무렵 서울에서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고 난 후에는 더 큰 고통에 시달렸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혀뿌리의 가장 깊은 곳을 만졌다. 쉽지 않았다.

간신히 토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기가 막혔다.
어제 내가 먹은 것은 아주 조금인데 내 목구멍에서 쏟아져나오는 것들의 역사는 꽤 긴 듯했다. 최소한 이틀치는 되는 것 같았다.
소화가 전혀 안 되고 있었군, 토해서 다행이야 - 양치질을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비몽사몽간을 헤매며 식은땀을 흘렸다.

다시 화장실로 달려갔고 이번엔 손가락으로 혀뿌리를 눌러줄 필요가 없었다.
이번엔 한 사나흘치 분량이 쏟아져나왔다.
요며칠 배가 빵빵하게 불러 있었는데 토하고 나니 배가 쏙 들어갔다.
최소한 사나흘은 정말로 소화가 전혀 안 되고 있었던 것 같다.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나는 '끙끙' 소리를 내며 앓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님 최소한 집이 이리로 오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리워하는 집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서초구 잠원동 한신4차 202동의 아파트일까, 부모님이 계신 곳일까, 아님 그냥 외국이 아닌 내게 익숙한 나라 익숙한 도시일까.
작년 이맘때의 내게는 독립이 목표였다. 나는 집을 떠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나는 왜 집을 떠나고 싶어했을까.
과거의 나에게 물었다.
박혜림, 넌 왜 그렇게 집을 나가고 싶어 했던 거니.
실망스럽게도 박혜림은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잘 기억이 안 나네. 내가 왜 그랬더라?

아침에 거울을 보니 얼굴이 쏙 빠져있었다.
며칠전 목욕탕에서 체중을 재어보았을 땐 한국에서보다 1kg 정도 줄어있었다.
중국은 음기가 강한 땅이고 모든 음식에 기름이 들어 있어서 특히 여자들은 중국에 오면 최소한 5,6kg 심하면 10kg까지 체중이 불어난다.
그 실례들이 이곳 청도땅을 휘젓고 다니고 있고 유학생 식당에 가면 여학생들의 살타령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을 수 있다.
이땅에서 몸이 축나는 여자는 나 하나뿐인 듯하여 원망스럽다.

이 못난 몸뚱이 때문에 하고자 했던 일들을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떠올린다.
다시 나에게 묻는다.
뭘 어떻게 해주면 튼튼해질래?
일단 커피는 절대 마시지 말아줘. 두 잔이 넘어가면 반드시 탈이 나고 있잖아?
기특하게도 담배는 땡기지도 않으니 됐고, 집에서 맨손체조라도 좀 하지 그래?
밥은 정말 문제인데, 중국음식은 제발 조심해서 먹어줘. 그리고 소화가 안 되니까 제발 입에서 꼭꼭 씹은 후 삼켜줘라... 그리고, 실은 밥 문제는 방법이 없어보인다. 땡기는 것은 거의 없고 피하고 싶은 것들 리스트만 길어지고 있으니까.
한마디로, 그냥 얼른 적응해라~!!!


Sophie	아...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 망설이다가 몇자 적고갑니다. 저도 최근에 혼수상태를 동반하는 토사곽란을 종종 겪은터라, 상황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식사는 적게 드시더라도 제때, 따뜻한 것으로. 그리고 밀가루와 카페인음료 피하시고, 가장 좋은 것은 미음입니다. 우유, 바나나도 안좋다는군요... 잠을 많이 주무셔야 하고요. (다 알고계실테지만요...)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몸도 순해지는데... 방학동안 몸조리 잘하시기를요. (가끔 들어와 구경하다가는데, 오늘은 내용에 공감이 가서, 몇자 적고 갑니다...)	2003/12/20	x

박혜림	아, 감사... 동병상련이라는 게 이렇게 눈물겨운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죠, '토사곽란' 이 단어가 안 떠올랐더랬습니다. Sophie님도 부디 몸 조심하세요.	2003/12/20

민조	혜림! 그렇게 자꾸 아파서 어떡하나... 오늘 처음으로 그냥 돌아오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한스랑 같은 곳에 있음 안된다고 우겼던 것도 후회되고... 흰죽을 잔뜩 쑤어놓고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조금씩 데워먹도록 해. 에휴, 속상해...	2003/12/20	x

박혜림	민조, 너냐? 나를 상해가 아닌 청도로 보낸 것이? 음.. 늦었지만 감사한다. 상해에 있는 단원은 매일 아침 3시간씩 주5일간 15시간이나 강의를 한다더라. 한번에 3시간 강의하면 기냥 허리가 꺾여버린대. 너무 힘들어서. 게다가 겨울방학도 3주밖에 안 된다네. 나는 6주쯤 되는데 말야. 한스와 바꾸기엔 너무 대가가 크지 않냐. 방금 쌀 한주먹으로 죽 끓여서 <첨밀밀> 틀어놓고 먹었다. <첨밀밀>에서의 여명은 정말이지....아~ 미치겠더라. 어쨌건 집 떠나서 고생하는 여명과 장만옥을 보며 힘을 얻고 있다. 근데 쟤네들은 밥도 잘 먹네~	2003/12/20

희준	따뜻한 차를 많이 마시렴... 정말 많이.. 중국에 있는 친구들도 식사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던데.. 그 후 모리화차(쟈스민)를 산소처럼 마셨다고 하더구나. 아마도 중국인들이 모리화차와 독주를 자주마시는 것 또한 그네들 토양에서 공급되는 기름진 음식과 소화기관을 힘들게 만드는 물과 음식들을 완화해주기 위한 방편이라고 들었다. 연암선생의 말씀도 있었거니와 '술은 오장육부와 정신건강에 백해무익하니' 권하기 어렵고 모리화차를 자주 마시렴.. 너 자꾸 아파서 이 친구 걱정속에 긴 글 적는다.	2003/12/22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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