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쓴사람 :	박혜림
	쓴내용 :	꿈꾸고 해몽하고

어젯밤에 꿈을 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간밤의 꿈이 또렷해진다.
이런 내용이다.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날이었다.
짐을 싸들고 룰루랄라 체크아웃하고 나와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해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차, 아끼는 샌들을 호텔방에 두고온 것이다.
보석 박힌, 발 편한, 핑크빛의 샌들이었다.
난 이런 샌들을 갖고있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호텔로 돌아갔다.
나 방금 체크아웃하고 나간 사람인데 방에 샌들을 두고나왔다. 열쇠 좀 다오~
열쇠를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샌들을 찾아야지, 어디다 뒀더라~ 하며 옷장 문을 열었다.
샌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내겐 그런 샌들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내가 왜 그렇게 큰 방에 묵었는지 모르겠으나 방도 크고 그래서 옷장도 무지 큰데
그 큰 옷장에 내 옷이 하나 가득 걸려 있는 것이다.
여름옷, 겨울옷, 가을옷, 운동복...
나는 샌들 찾으랴 옷 챙기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가방이 미어터져라 옷을 쑤셔넣고
어디서 구했는지 박스까지 가져다가 옷을 넣는다.

그러는 사이에 비행기 시간이 임박한다.

나는 그래서 비행기를 무사히 탔던가, 못 탔던가...

디자이너랑 같이 외근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비때문에 정체된 도로 위에서 나는 꿈을 해몽했다.

나는 아마 떠나고 싶은가 보다.
아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이제 그만 떠나고 싶은 그 대상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아끼는, 소중한, 내게 딱 맞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이다.
혹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어쩌면 있었으면 싶은 것이다.
그것 때문에, 그것만이라도 챙기고 싶어서 밍기적거리다가 나는 다른 소소한 것들에 발목이 잡힌다.

논현동에서 역삼동 가는 길이 멀기도 하다.
나는 해몽을 끝내놓고 해몽을 검증한다.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버리려거든 통째로 버려야 한다.
떠나려거든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챙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다.
내가 애초에 바랬던 그것은 허상인지 실재인지 알 수도 없는데
별것도 아닌 것이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나의 이성이 얼마나 한심하게 굴고 있으면
나의 무의식이 이런 꿈을 토해냈을까.


혜정	버리려거든 통째로 버리라... 떠나려거든 돌아보지 말아라... 지금의 나에게 딱 적합한 말인 듯 싶구나. 어제 사장들과 그만두는 시기를 줄다리기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손에 가득 쥐고서 한꺼번에 놓아버리겠다 라는 게, 그게 책임지는 것이라 생각한 게 얼마나 큰 허상인가를... 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너무나 소비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만두는 사람, 떠나는 사람은 그만두고 떠나면 그뿐이다. 나머지는 남은 사람들의 몫인 걸, 왜 나는 이것저것 재고 따지느라 생각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파업이 아닌 태업으로 들어간다. 내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법이 고작 이것밖에 없을까, 라는 부분에선 한심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쥐고 있는 것보다 손에서 놓아버리는 게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는 요즈음이다.	2003/03/07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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