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떠나도 음악은 남는다.
CD를 버려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 음악을 틀고 있으므로
우리는 거리에서, 카페에서, 술집에서
무방비 상태로 함께 듣던 음악의 습격을 받게 된다.
- 김영하
실로 오랜만에 보러 간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튀어나온
<분홍 립스틱>은 한때는 참 가까웠던 대학 선배의 18번이었다.
언젠가 대낮에 헐렁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교통방송에서 틀어준 <분홍 립스틱>을 들으며 문득 안부가 궁금했던 기억.
이젠 일어서서 노래를 부를 만한 술집이 없지만
그리고 나는 이젠 노래방 같은 곳엔 절대로 끌려가지 않지만
예전에, 아주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노래를 해야 할 상황이 되면
<나에게 조금 더>를 불렀더랬다.
술을 마시면 눈가가 발그레해지던 누군가가
막 첫소절을 시작한 나를 주저앉히며 이렇게 말했었다.
너 내 앞에서 그 노래 부르지 마.
사람은 떠나도 노래는 남는다는 것을 몰랐던 그때의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그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18번의 습격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에게 새겨진 그 아이의 노래는 여행스케치의 <옛친구에게>였다.
나무가 많고 물이 흐르고 그 물 앞에 평상이 깔려있던 몇박몇일의 여름 MT 장소에서
낮에도 밤에도, 후발대를 마중나가던 흙길에서도 그 노래를 대차게 불러댔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분홍립스틱
나에게 조금 더
옛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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