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주 심한 욕을 확 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우울해서 <싱글즈>를 틀어놓고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종종 웃었고 그러다가 기분마저 좋아졌다.
명작이다.
나난이 일하는 레스토랑의 점장이 좆같은 일을 당한 나난에게 담배를 한대 권하며 그럴 땐 '씨발 좆같네'라고 말해버리라고 했다.
나난은 담배도 못 피우고 욕도 못 했다.
점장이 나난을 보며 도대체 잘 하는 게 없네.. 라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담배도 피울 줄 알고 욕도 확 해버릴 줄 안다.
감기 때문에 담배는 전혀 안 땡기니 관두고, 혼자서 점장이 해보라는 욕을 기꺼이 해보였다.
씨발, 좆같네~!
음.. 기분이 좀 나아졌나?
모르겠다.
암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확실하다.
거울을 봤다.
감기 때문에 입술이 터져서 지저분해 보였다.
게다가 뾰로지가 한 개 나올락말락 대가리를 내밀고 있다.
모처럼 참존콘트롤크림으로 각질 제거를 해주고 수분팩도 해줬다.
다시 거울을 보았다.
손으로 만져보면 아까보다 매끄러워지긴 했는데 눈으로 보면 여전히 꺼칠하다.
젠장, 맘에 안 들지만 아직 환자니까 그렇다고 치자...
몸이 안 좋아진 이후로 아침에 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뚜기 즉석국을 한국과 비슷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한국에 살 땐 햇반이 기적의 제품이라고 생각했더랬는데 지금은 전자레인지도 없고 해서
오뚜기 즉석국을 기적의 제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사골국이라는 것은 아쉬운대로 사골국 비슷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점심 때 그 사골국을 푹푹 끓여서 밥 잔뜩 말아 먹었다.
그래서일까, 저녁 시간이 지나도 배꼽시계가 울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저녁 생각이 없어서 그냥 잤는데.
어느새 하루 두끼 식사에 익숙해진 이 몸이 아침 점심 두 끼만 먹어주면 만족하는 것일까?
암튼 편하긴 하다.
그런데 저녁도 안 먹고 9시가 넘었는데 왜 배가 볼록 나와 있는 거지?
젠장 젠장.
한때는 허리 라인 하나는 오목하게 쏙 들어갔었는데
그때 오목했던 각도만큼 지금은 볼록하게 나와 있다.
우씨... 뭔가 억울하다...
이젠 엄마 말씀을 믿는다.
엄마도 처녀 땐 얼굴이 조막만했더라는 그 말, 이젠 믿는다.
이국땅에서 혼자 쓸쓸히 뱃살만 키워버린 쪼다, 박혜림.
위로전화가 왔길래
우울할 땐 무엇을 하십니까?
라고 문의했다.
대답은
잠을 잔다
였다.
우~~~.
놀랍게도 나는 여기 청도에서 잠의 궁극을 맛보았다.
잠탱이 잠탱이 왕잠탱이 박혜림, 이젠 더 이상 잘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잠이라면 끝내줬지만 이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심지어 어제는 한참 푹 자다가 새벽 2시에 깨어나는, 인생 최초의 경험을 했다.
아무리 일찍 자도 새벽 2시에 깨본 적은 평생 한번도 없었다.
그러고도 다시 자서 7시에 일어나긴 했지만
암튼 이 멍청하고 둔한 몸뚱아리마저 잠이라면 지겹다.
지겨운데 공부나 해야겠다.
그리고
심심한데 이제 정신이나 차려야겠다.
음... 어쩌다 보니, 고무적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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