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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집회 현장에서 TV 기자의 카메라에 잡힌 한 학생은 촛불을 손에 들고 이렇게 말했다.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내는 데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들의 이런 행동이 부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시의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대학 때 사회과학책이랍시고 이것저것 펄럭펄럭 들춰보며 그나마 깨달은 진실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세계관이 다른 종족들간에는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부시에게는 미국이 이라크며 북한을 제멋대로 침략하는 것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정의일 것이며,
전두환에게는 군화발로 청와대를 향해 진군하는 것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는 역사적 소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진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결코 설득이나 간청이 아니라 호령이어야 한다.
집회는 반대하는 자들의 힘의 과시이고, 그 힘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겁을 먹고 물러나게 함이 목적이다.
주먹을 휘두르며 아지를 뜨고 화염병을 던졌던 것은 그렇게 극단적인 폭력을 써야 할 만큼 그 권력이 폭력적이었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집회의 불법성과 폭력성에만 촛점을 맞추었던 지난 날의 한국 언론은 모두 다 어용이었다.
반전 집회의 촛불은 80년대의 화염병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인터뷰에 응했던 그 학생이 힘의 상징을 손에 들고 그렇게 나약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거슬렸다.
부시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니...
뭐, 실은 표현상의 차이일 뿐 이 전쟁이 부당하고 미국이 옳지 않다는 근본적인 생각은 다르지 않겠지만 말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간에 벌어지는 이 힘의 대결은 일상 속에서도 숱하게 목격된다.
결코 설득되지 않을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살기 위해 '내가 너보다 쎄!'라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나는 종종 목격한다. 그들의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시위다. 시위란 말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위협하는 것이다. 화염병으로, 촛불로 혹은 쪽수로, 혹은 또 다른 무엇으로 형상화된 힘을 보여줌으로써 위협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사고 구조가 다른 사람은 그렇게 아득히 먼 존재다.
거기에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을 땐...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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